생각

인간 욕심의 한계는 있는가?

해먹과난로 2011. 2. 25. 18:48

무바라크가 18일간의 민주화 투쟁에서 800명의 목숨을 거두고서야 하야했다.

 

리비아의 카다피는 외국 용병과 전투기를 동원해서 수천명을 학살하면서도 절대 굴복은 없다고 선언하였다 한다.

 

반복되는 역사의 비극 앞에서 가슴 아픈 한 주를 보내면서 단상을 끄적거려본다.

 

 

무바라크

 

이집트 국민의 70% 이상이 하루 2달러 수입으로 살아가는 빈민층인데 무바라크 일가는 74조원 규모의 부를 축적했다 한다. 물론 대부분 30년 동안 부정한 방법으로 일군 재산이다.

 

그 재산 상당 부분을 스위스 은행에 보관하였고 유럽 각국의 부동산도 많다 한다.

 

과연 무바라크는 그 많은 재산으로 무엇을 이루려 한 것일까? 차남이 권력을 승계할 예정이었다니 정권 세습 자금이었을까?

 

이집트 민중은 30년간 무바라크 일당에게 무력하게 착취당하면서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튀니지에서 시작된 재스민혁명이 없었다면 또 얼마나 더 무바라크에게 착취 당하고 있었을까?

 

조선시대 말에는 지주가 소출의 50%를 소작료로 거두고도 모자라 소작농 딸의 초야권까지 가지고 있었다는데.. 그 지경까지 수탈 당하면서 저항하지 못한 것은 못난 민중의 잘못이 더 크리라.

 

그런데 과연 인간 욕심에는 한계가 있는가?

 

삼성

 

나는 대학 졸업 후 바로 삼성 공채에 응시하여 삼성에 입사하였다. 당시에는 삼성 현대 대우 이렇게 3대 재벌 구도가 형성되어 있었고 그 중 가장 안정적이고 합리적 기업문화를 가진 삼성을 첫 직장으로 선택하였다.

 

한국 기업 중 가장 합리적인 문화와 의사결정 구조를 가진 삼성에서 운이 없었는지 내가 있던 제일합섬의 문화는 그리 합리적이지 않아 보였고 나는 결국 3년을 채우지 못하고 더 합리적 문화를 찾아 미국 기업으로 자리를 옮기게 된다.

 

삼성을 떠나면서도 나는 선대 이병철회장의 자서전에 나오는 공식적인 멘트를 어느 정도 믿었었다.

거만의 부를 이루어.. (중략).. 나만의 부가 아니라는 생각으로.. 국가와 사회를 위해 공헌하고자...  

내가 순진한 건지 이상론자인지 (아마 둘 다 이겠지) 나는 이 구절을 믿었었다. 믿는 근거는 별로 없었지만, 당시의 생각은 그 많은 부를 어찌할 것인가? 경제학의 한계효용 체감의 법칙에 따라 (가난뱅이의 1억원은 천국의 행복을 가져다 주지만, 1조 부자에게 1억원은 그냥 무감동한 숫자일 뿐이다.) 삼성의 사주가 1조를 더 번들 개인적으로 무슨 의미가 있으랴" 싶었다.

 

- 이런 순진한 생각을 하니 나는 태생적으로 (무한 경쟁과 승자 무한독식을 허용하는) 신자유주의자가 못 되나 보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삼성은 실패한 자동차 사업을 적당히 손실을 채워 넣고 팔아 넘기고 나머지 부분에서 엄청난 성공을 거두어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했다. 삼성전자 하나만 보더라도 그 눈부신 성공과 국가 경제에 끼친 영향은 칭송 받아 마땅하리라.

 

그러나 그들이 이룬 눈부신 성공 뒤에 가려진 그늘 또한 냉정한 평가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거대한 글로벌 기업의 경영권을 상속하면서 20억 조금 넘는 상속/증여세를 내고 넘어 갔다. 과연 법 위의 삼성이라는 말이 나오고 삼성공화국이라는 비판이 쏟아져 나온다.

 

(내 직장 동료 중 한 분은 삼성이 국가경제에 기여한 공로가 잘못을 덮고도 남는다고 한다. 내 질문은 경제에 기여한 공이 크면 법대로 증여세를 내지 않아도 되는지, 다른 수출 기업들도 증여세를 탈세해도 되는 가이다.)

 

범 삼성가로 불리는 삼성 한솔 CJ 신세계 보광 (처가 그룹이다.)의 한해 부가가치를 합치면 대한민국 GDP를 좌지 우지 할 정도니 과연 삼성공화국이라 불릴만한 경제력 집중을 이루었다.


전체 신문 잡지 광고에서 삼성의 비중이 20%를 넘는다한다. 삼성에 비판적인 기사를 쓰려면 모든 종이 미디어는 광고매출 20% 감소를 각오해야한다. 누가 감히 삼성에 대드는가?

 

무바라크의 30년 독재와 74조 축재와 삼성 일가의 끝을 모르는 독주를 보며 과연 인간의 욕심에는 한계가 있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의 답을 보는듯하다.

 

야채 노점 할머니

 

우리 아파트 정문 횡단 보도 앞에 비가오나 눈이오나 혹한기와 폭우 내릴 때를 빼고 항상 쭈그리고 앉아 밤 까시고 나물 다듬고 계시다가 지나가는 아파트 주부들에게 야채를 파시는 할머니가 계시다.

 

이 할머니 전에는 다른 할머니께서 그 자리를 지키시다가 마지막 1년 정도는 우리 집 창고에 팔다 남은 물건을 넣어 두고 다니셨다. 어느 날 아파트 복도의 우리 창고에 누가 들락거리길래 가보니, 야채 노점 할머니께서 팔다 남은 물건을 넣어 두시다가 화들짝 놀라서 가시는 것을 그냥 넣어두시라고 하였더니 그렇게 좋아하시며 미안해하시던 분이셨는데.. 어느 해인가 안보이셨다. 고생만하시다가 그나마 거동이 안 되시는 것이겠지..

 

하여간 그 자리는 지금의 할머님께서 똑 같은 모습으로 몇 년째 앉아 계신다.

 

당연히 이 할머니의 야채는 매우 싸다. 얼마 안 되는 양이지만 직접 보도 블럭 끝에 앉아 다듬으신 야채는 항상 잘 팔리는 듯하다.

 

나 같은 감상주의자는 지날 때마다 할머니 모습에 가슴이 아려 온다. 어찌하여 어느 할머니는 이 아파트에 사시면서 쇼핑과 마사지와 요가와 사교 모임에 눈코 뜰새 없이 바쁘시고, 야채 노점 할머니는 웬만한 비는 그냥 맞아가시면서 걸인 행색으로 저리 고생스럽게 사시는가?

 

저 연세의 어르신들이 모두 편히 쉴 사회보장책은 생각만큼 쉽지 않을 것이다. 노령연금이나 다른 연금이 충분함에도 불구하고 못난 자식이 말아 먹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승자와 패자의 분배는 어느 정도가 적정선일까?

 

위에서 말한 대로 조선시대 말에는 지주가 소출의 50%를 소작료로 거두고도 모자라 소작농 딸의 초야권까지 가지고 있었다는데.. 욕지기가 나오는 분배구조이다.

 

전태일 열사가 일하던 청계피복노조의 닭장에서는 하루 세번정도 일어서서 허리를 필 수있을만큼 작업환경이 열악했다. 오죽하면 투쟁구호가 근로기준법 준수하라였는가? 물론 그 당시의 부유층은 자식들을 신의 아들로 만들기 위해 미국유학은 기본이고 다양한 국제 엘리트로서의 교육에 매진하고 계셨다. 어떤가 조선 말 지주에 비하면 욕지기가 덜 나오는가?

 

인간의 욕심에는 한계가 있을까? 적정한 분배는 어떻게해야 가능할까?

 

세금을 조금 더 내서라도 기꺼이 저분들에게 복지혜택이 돌아가게 할 마음을 가지신 분들이 얼마나 있을까?

 

부동산 상위 5%에 부과되던 부유세인 종부세를 세금 폭탄이라며 아무 생각 없이 조선일보를 따라 욕하던 택시 기사분은 아직도 그렇게 생각할까?

 

조중동과 신자유주의자들이 왕초로 모시는 미국의 부동산 보유세율은 종부세의 10배쯤 된다는 사실은 조중동에서는 한 번도 말하지 않는다. 왜 조중동에서 말하지 않으면 아무도 모를까?

 

할머니를 볼 때 마다 떠오르는 생각이다.

 

- 카다피와 리비아의 참극은 광주민주화운동을 떠올리게 한다. 나중에 생각을 정리하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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